1795년,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파를 지칭하는 용어로 프랑스어 terrorist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terror와 -ist의 결합으로, terrorism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국가의 위협과 정부의 강압을 테러적 수단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1866년에는 러시아에서 극단적인 혁명가들이 테러를 통해 차르 정부를 무너뜨리려 했던 사건을 지칭하며 영어로 쓰였고, 1921년에는 소련 정부의 정책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19세기 다른 용례로는 노동 불안(“셰필드 만행,” 1867년), 스페인(1869년), 아일랜드(1875년), 헝가리(1849년)의 반란군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1849년에는 1848년 봉기 이후의 반동을 설명하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bourgeois terrorists reign in France”). 1819년에는 유권자를 위협하거나 강압하여 공직에 오르는 사람을 정치적으로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과 협력자들에 대한 Maquis의 전술을 보도하는 신문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Terrorist Activity Of French Patriots Grows,” AP 헤드라인, 1944년 2월 28일). 1944년에는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에 대항하는 유대인 전술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Every man, woman and child of the Jewish community must do his or her best to bring this terrorism to an end." [Winston Churchill, from statement in House of Commons, Nov. 17, 1944, in response to the assassination of Lord Moyne by Jewish terrorists]
“유대인 공동체의 모든 남녀노소는 이 테러리즘을 종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윈스턴 처칠, 1944년 11월 17일 하원에서 유대인 테러리스트에 의해 로드 모인 경이 암살된 사건에 대한 발언]
The term now usually refers to a member of a clandestine or expatriate organization aiming to coerce an established government by acts of violence against it or its subjects. [OED, 1989]
현재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폭력을 통해 기존 정부를 강압하려는 비밀 조직이나 망명 조직의 구성원을 지칭합니다. [OED, 1989]
1945년 미국 서부 해안의 신문에서는 강제 수용소에서 돌아온 일본인에 대한 공격을 지칭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19세기에는 때때로 “과장된 경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한 쪽의 terrorist가 다른 쪽의 guerrilla나 freedom fighter로 해석되는 경향은 1956년 키프로스에서의 영국 작전과 1973년 로디지아 전쟁을 언급하며 주목받았습니다. Terrorizer는 1892년부터 사용된 것으로 확인됩니다.